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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영국 땅이 있다고?! 헤라클래스의 땅 지브롤터(Gibraltar)

돌라미 2023. 3. 1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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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입니다. 저 멀리 떨어진 섬도 아니고 이베리아에 있는 스페인 본토에 영국의 땅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우리가 보통 어떤 나라에, 다른 나라 영토가 있다고 하면 이탈리아의 비타칸시티나, 말레이 반도의 싱가포르 정도로만 떠오르실 꺼라 생각되는데요. 

 

 

하지만 스페인 한복판에 영국 영토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유럽여행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브롤터(Gibraltar)의 위치,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해협너머에 모로코가 보인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베리아 반도 최남단에 지브롤터(Gibraltar)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스페인사이에 빠지는 해협에 있는 곳인데요.

 

 

 

세로 길이 5km에 너비는 1,25~1,3km정도 되는 아주 작은 지역입니니다. 땅넓이가 6.8㎦ 정도로 위에 예시를 들었던 바티칸시티나 싱가포르에 비해서는 훨씬 작은 토지입니다.  6.8㎦ 이라면. 여의도보다 2.3배 정도의 크기라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가늠이 가실 겁니다.

 

 

 

2016년 기준, 인구도 3만 4천쯤 되니 2023년 2월 강원도 정선 인구랑 거의 유사합니다 ( = 한국의 포지션으로 깡시골이라는 듯)

 

그래도 한국에서 깡시골 포지션 치고는 지역에 지브롤터 대학 (University of Gibraltar)도 있고, 코로나 이전에는 관광객이 600~800만 명 정도로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나름 유럽 내에서는 유명한 관광지 같습니다. 근데 스페인과 지브롤터를 이어 주는 교통편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라서 스페인 여행 시에는 좀 배제되는 게 없지 않아 있는 거 같습니다.

영국은 쉥궨조약에 서명한 국가가 아니라서, 스페인에서 지브롤터로 입국 시,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하니까요. 

 

 

 

위에 지폐는 지브롤터. 아래지폐는 영국 본토에서 통용되는 50파운드 짜리 지폐입니다. 지브롤터에서는 지브롤터 파운드와 영국 본토 파운드를 혼용하고 있는데, 관광객을이 지브롤터 파운드를 기념으로 환전해 가곤합니다.

 

 

 

 

그렇다면 지브롤터는 어쩌다가 영국령의 국토가 되었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700년 11월 1일 스페인 왕이자 스페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마지막 자손이었던 카를로스 2세가 사망하게 됩니다. 마지막 자손이라는 뜻은 후사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죠. 실제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근친혼으로 인한 부작용을 세대를 세려 가면 내려갈수록 더 많이 더 심하게 겪고 있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왕조 이외에도 실제로 전 세계 역사를 둘러보면 근친을 해서 가문을 유지하는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역사 신라만 봐도 성골, 진골의 골품을 유지하기 위해서 근친으로 정략결혼을 했지만, 신라와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차이는 정략결혼 시 촌수를 얼마나 관계를 두었느냐였습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를 보면 카를로스 2세와 관련된 모든 친족이 4촌 이내에 근친혼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4 촌간 결혼 5번, 3 촌간 결혼 3번) 

 

 

 

 

실제로 카를로스 2세의 부모님도 삼촌과 조카의 관계에서 결혼해서 카를로스 2세를 낳았습니다. 유전병의 복합체로 태어난 카를로스 2세는 입을 다물지 못해서 음식을 씹지도 못했고, 간질도 앓고 있었으며, 콩팥도 1개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머리카락은 30살이 지나면서 빠지기 시작했고, 혼자서 이상한 소리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정신병에, 면역력도 약했고, 무엇보다 불임이었던 카를로스 2세기에 후사를 남기지도 못하고 30대 중반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카를로슨 2세. 유전병으로 인해, 길쭉한 합스부르크의 턱이 눈에 띈다. 참고로 이건 보정을 한 작품

 

 

 

 

문제는 카를로스 2세가 서거 한 뒤에 터집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후사를 보지 못했기에 스페인 내에서 왕위를 계승받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잖아요? 유럽의 왕족은 국가의 왕족들로 인해 피와 족보가 섞이고 섞였다는 것. 

 그렇게 해서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의 손자였던 필리프(Philip) 공작이 후계자로 낙점됩니다. (필리프의 할머니이지 루이 14세의 아내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공주 출신)

 

 

 

 

그런데 이 후계 문제를 영국이 문제를 걸고넘어집니다. 영국과 프랑스과 과거에 사이가 안 좋았던 건 매우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도 왕위 계승문제 때문에 100년 넘게 전쟁을 한 사례도 있으니까요. 영국의 입장에서 루이 14세의 손자가 스페인의 왕이 된다면, 몇십 년 뒤에 프랑스의 영토는 프랑스+스페인 영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영국에서 이걸 가만히 두고 볼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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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국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네덜란드가 프랑스의 후계자 문제에 반대하여,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카 출신인 카를(Charles) 대공을 추대하게 됩니다. 당연히 프랑스 측에서는 이를 승인할 리가 없었고, 본격적으로 12년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The War of the Spanish Succession)이 1701년에 시작됩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당시 영국이 앤 여왕이 집권하고 있던 시기라서 앤 여왕의 전쟁(Queen Anne’s War)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스페인은 프랑스와 한 편이었습니다)

 

 

전황은 전반적으로 스페인-프랑스 연합군에게 불리하게 흘러갑니다. 

이때 전쟁 초기 1704년에 영국은 영국의 지브롤터에 점령하게 되고 다음 해에 바르셀로나가 침공당합니다. 

1704년 블레넘( Blenheim) 전투, 1706년 라미예(Ramillies) 전투, 1708년 우데 나르데 (Oudenarde) 전투,  1709년 말플라케에서 프랑스 군이 지속적으로 패배하면서 연합군에 몰리게 됩니다.

 

1704년 8월 4일 영국-네덜란드 연합군이 지브롤터에 상륙하고 있다.

 

 

 

 

그런데 1711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요세프 1세( Joseph I)가 사망하고 그 자리에, 오스트리아 측에서 스페인 왕 후계자로 내몰았던 카를 대공이 차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게 됩니다. 이러면 상황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영국이 프랑스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본래 프랑스를 견제하려고 한 이유가 세력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프랑스에서 가문이 2 왕국을 다스리게 되면 기존 세력 균형이 완전 한쪽으로 쏠리는 상황이 되니까요. 그런데, 그러한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동맹에서, 세력균형을 깰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ㅋㅋㅋㅋ

 

 

 

이 관계를 계기로 영국과 오스트리아의 동맹의 관계는 깨지게 되어버리고, 전쟁 말기에 프랑스에 본토도 침공받을뿐더러 전쟁 자금이 다 떨어진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평화요청(=항복)으로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과 1714년  라슈타트조약으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위트레흐트 조약을 체결하면서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스페인의 왕은 루이 14세의 손자 필리프가 이어받아 필리프가 펠리페 5세가 됩니다. 대신에 펠리페 5세는 프랑스 왕위 계승의 후계자에서 자리에서 빠져야만 했습니다. 이 조약 때문에 필리프는 스페인어를 1도 모르는 프랑스 사람이 왕이 되는 다소 우스운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프랑스의 편에 섰다가 패전국이 된 스페인은 지브롤터를 포함해서 미노르카섬, 네덜란드, 이탈리아등의 영토를 상실하게 되어서 강대국이라는 타이틀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이 왕위 계승전쟁은 유럽뿐만 아니라, 각국의 식민지에서 조자 전쟁이 벌어진 규모가 큰 전쟁이었습니다. 당시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으로 인해서 약 25만 명이 죽은 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당시 수도였던 마드리드 인구가 막 10만을 넘었었을 때입니다)

 

1704년 블레넘(Blenheim) 전투 당시떄의 영국군

 

 

 

이 전쟁에서 최대 수혜국을 입은 국가는 바로 영국입니다. 이미 전쟁이 끝나기 전인 1707년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첫 연합왕국을 이뤘고, 프랑스에게는 캐나다 식민지를, 스페인에게서는 지브롤터와 미노르카를 할양받게 됩니다.

이 전쟁은 대영제국의 시작한다는 시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트레흐트 조약이후로 국경이 새롭게 변한 유럽의 지도 국경지도. 스페인은 지브롤터를 포함한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의 많은 영토를 상실한다.

The War of the Spanish Succession: The End of French Hegemony (thecollector.com)

 

 

 

 

전쟁은 끝이 났지만, 스페인이 지브롤터를 탈환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었습니다. 실제도 1727년에 지브롤터를 되찾기 위해군대를 보냈지만 실패하였고 1779년에 다시 한번 지브롤터 탈환을 위한 대공세가 있었고 1783년까지 포위 공세를 가했지만, 지브롤터의 1대 주지사를 지냈던 엘리엇 장군(General Eliott)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공세는 실패하게 됐습니다.

1830년에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면서 영국이 지브롤터의 개입이 더 늘어나게 됩니다.

 

상륙하려는 스페인군을 격파하는 엘리엇 장군 1782년 10월 13일 지브롤터 포위공세 중, John Singleton Copley의 작품

 

 

 

실제로 지브롤터는 아직도 영국과 스페인사이에 있는 영토 분쟁지역입니다.

1968년에 지브롤터 국민들을 대상으로 지브롤터 영토롤 스페인에 돌려줄지, 영국에 남을지 국민투표를 했는데, 당시 13000여 명에 가까운 주민 중 12,762표가 영국 잔류에 투표했습니다. 

 

 

 

이 투표 이후에 1969년 영국이 지브롤터에 자치권을 부여하면서, 스페인은 영구에 대한 모든 국경을 폐쇄하고 모든 통신 연결을 끊어서 한동안 외교 관계가 악화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조치는 1983년 프랑코 정부가 없어지면서 조치를 해체하게 됩니다.

 

 

 

1981년에는 영국 정부에서 지브롤터 주민들에게 영국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지브롤터가 영국의 땅임을 공고히 했고 일정나이를 넘은 지브롤터 사람들이 영국 본토에 6월 이상 거주하면 선거권도 부여했습니다.

 

 

 

1997년과 2002년 사이에 영국과 스페인은 지브롤터에 대한 일시적인 공동 주권 확립에 관한 일련의 회담 가지게 되었습니다만,  2002년 11월에 같은 주제로 실시한 국민투표도 같은 결과로 영국에 잔류를 선택하게 됩니다. 

 

2002년 11월, 지브롤터 국민투표 당일

출처: The History of Gibraltar and how it came to be British (historic-uk.com)

 

 

 

 

2004년 말부터 지역주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협력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3자 회담을 개최하고 있으며, 조세 및 금융서비스, 통신 및 해상보안, 정책, 법률 및 관세서비스, 환경보호 등의 분야에서 협력협정 체결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지브롤터의 영해 3마일에 대한 영해권 주장에 대한 논쟁은 스페인과 영국 해군 순찰대 사이의 비폭력적인 해상 충돌을 야기한 적이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2016년에 영국이 브렉시트로 EU를 탈퇴하자 스페인은 지속적으로 지브롤터의 영유권 반환을 요구하고습니다.

 

 

 

지브롤터는 영국도 현재 절대 포기하기 힘든 지역입니다. 지브롤터에서 수입하는 세금이나 관광업 수입등은 둘째 치고, 군 기지로써 중요한 요점이기 때문엡니다. 1,2차례의 세계대전 당시 군함을 수리/제조하기도 했고 실제로 2차 대전 당시 미국군이 적을 폭격하기 위해서 지브롤터를 전진기지로 이용을 많이 했었으며, 현재는 영국의 항공모함이 정박하는 선박 중 한 곳이기 때문에, 군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입니다.

 

 

 

 

 

 

※지브롤터의 관광 명소 

 

 

 

1. 유로파 포인트(Europa Point)

지브롤터에서 최남단에 위치한 장소.. 맑은 날에는 지브롤터 해협을 가로질 모로코의 북아프리카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유로파 포인트의 군대

출처: EUROPA POINT - Gibraltar Info

 

 

 

 

2, 무어양식 성 Moorish Castle, Gibraltar

이슬람 세력 마린 왕조 때 지어진 무어 양식의 성. 건설시기는 8세기초 건물로 추정된다고 한다. 여기에 가면 오마주의 탑(The Tower of Homage)을 꼭 구경하고 올 것

 

 

출처: Moorish Castle, Gibraltar - Absolute Axarquia

 

 

 

 

 

3. 지브롤터의 스카이워크 (Rock of Gibraltar Skywalk)

지브롤터 중심에는 지브롤터의 바위산(Rock of Gibraltar)이 있습니다 - 타 리크산이라고도 하는데 이산에 오르면 오른쪽에 있는 야생원숭이를 볼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foundtheworld.com/wp-content/uploads/2017/10/Macaque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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