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이 28일이긴 하지만 29일날 게재될 예정이니
3일간이나 포스트 개재를 쉬게 되었네요ㅋㅋㅋㅋ
제가 알바를 겸하면서 포스팅을 쓰고있습니만,. 지난 26일때 서울에 폭설이 왔었죠?
그래서 눈 내린 궁전을 아직 가본적이 한번도 없어서 혼자 경복궁 출사 나갔습니닼ㅋㅋㅋㅋ
출사 나갔을때가 정오였는데 계속 눈발이 휘날리고 있어서. 폰카로 사진찍을 때는 좋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액정에 눈이 묻어 녹으니까)
이번 포스팅에서는 세고비아의 역사와 로마 수도교에대해서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세고비아는 카스티아레온 자치지방에 있는 도시로 클라모레스 강과 에레스마 강을 사이에 끼고 있습니다.
해발은 약750m의 고원지대이며, 인구가 5만 남짓 안되는 작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런 조그마한 도시에 사람이 거주하게 된지 300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기원전 1000년 전에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로 족이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와 정착을 하기 시작했지만, 기원전 200년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하기 시작하더니, 세고비아는 기원전 80년전쯤에 로마의 영토가 되어 타라콘넨세라는 행정구역으로 편입됩니다.
그리고 기원전 약 50여년 경에 강의 물을 끌어 들이고자 로마 수도교를 증축하게 됩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The Aqueduct at Segovia and The Castle of Madrid
Jan Cornelisz Vermeyen
게르만족이 372년에 남하를 시작으로 409년에는 서고트족(게르만족의 일파)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하면서 415년에 서고트 왕국을 건국했습니다. 서고트족은 세고비아와 그 근처에 주로 거점을 삼다가 수도를 톨레도로 삼게됩니다.
8세기에 이슬람 세력의 북상으로 세고비아를 내어주게 되지만, 1079년에 알폰소 6세가 이곳을 탈환하면서 스페인의 영토로 편입됩니다.
11세기부터 알카사르를 포함 수많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 졌는데, 특히 알카사르는 13세기동안에는 왕실 거주지로 사용되다가, 1474년 이사벨1세 여왕시기떄는 알카사를 궁전으로 새로 증측하였습니다.
16세기에서 18세기 동안에는 스페인왕국의 조폐국이 도시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는데, 현재 세고비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산업 건물이 조폐소로 남아 있습니다.
drawing of Segovia
Anton van den Wyngaerde
1562
세고비아는 크게 2군데의 지역이 있는데 하나는 에레스마 강과 클라모레스 강 사이의 좁은 석회암 능선에 위치한 고대 성벽으로 둘러싸인 상부 마을이있고 에레스마 강 아래 성벽 바깥의 하부 지역이 있습니다.
보통 관광지의 대부분 에레스마 강 하부 지역에 있습니다. 그 지역이 구시가지이고, 1985년에 세고비아 구시가지와 수도교는 1985년 유네스코에 문화 유산으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 수도교 (Rome Aqueduct)
세고비아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인 로마 수도교입니다. 세고비아 마을 문장 뿐만 아니라 주 깃발에서도 수도교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세고비아 수도교는 현재 800미터 정도의 길이로 보존되고 있지만, 이 수도교가 처음 만들어졌던 기원전 50년경에는 최소 14, 최대 17km정도의 길이로, 세고비아에서 남서쪽에 떨어져 있었던 프리오 강(Frío River)에서 물을 운반했다고 합니다.
높이는 제일 낮은 지대로부터 30m 정도되고 160여개의 아치가 존재합니다.
시에라 데 과다라마 산맥에서 가져온 화강암 석재 20000여개를 사용했는데, 이 수도교는 건축할 때 석고나 납, 모르타르(시멘트 일종)를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하나 가져볼 수 있습니다. 세고비아에는 이미 클라모레스 강과 에레스마 강, 2개의 강을 이미 끼고 있었는데, 굳이 14~17km나 떨어진 곳어서 수로를 짓고 물을 끌어다 들일 이유가 있겠냐는 거죠.
당시 세고비아는 당시 흐르던 두 강의 물 수량보다 더 많은 수량을 필요로 했을 겁니다.
실제로 로마도 테베레 강이 바로 앞에 있었지만, 당시 로마 인구를 감당할만한 물이 부족한 상황이라, 동쪽에서 2~30km 떨어진 티볼리에서 수도교를 지어서 물을 끌어다가 쓰기도 했습니다.
로마시대는 단지 식수나 농업, 목축의 용수 뿐만 아니라,
목욕탕도 도시마다 있었으니 다른 나라에 비해 물을 많이 필요로 했을것입니다.
로마 수도교는 로마의 건축 양식에서 지어진 만큼 로마의 건축에대해서 어느 정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 건축의 첫번째 특징은 아치형 구조라는 것입니다. 보통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기둥사이를 천장을 버팀목으로 연결하게 됩니다. (그걸 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직선의 보는 기둥과 기둥사이를 벌리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기둥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보가 버틸 수 있는 힘도 줄어들 테니까요.
하지만 아치형으로 보를 지으면 기둥을 받쳐주는 보의 힘이 아래 뿐만이 아니라 보의 반원 안쪽으로 힘이 분산되기에 기둥 간격을 더 넓게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아치형을 사용함으로써 증축시간, 노동력, 자원이 줄어드는것도 큰 장점이 되겠습니다. 만약 로마때 아치형 구조가 없었더라면, 지금과 같이 아치들이 뻥뚫려서 주변 풍경을 보거나 수도교와 같이 아름다른 배경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이런 수도교는 평면으로된 다리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물을 운반했는지가
의아할 수도 있을겁니다. 당시에는 펌프가 없어서 수동으로 물을 나를 방법밖에 없었는데 말입니다.
먼저 강아래에 있는 지반을 파서 물을 끌어 들입니다. 당연히 경사가 있을수록 물은 흐르겠지만, 경사가 급할수록 수도교의 길이는 짧아 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극단직언 경사로를 만들게 됩니다. 0.001 도 정도의 기울기를 만들어서 수도교를 만들게 됩니다. 즉 1km를 갈동안 높이는 1m 밖에 차이가 안난다는 것이죠. 그래서 수도교의 길이를 20~30km 넘게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수학기술이 그정도까지 발달하지 않았기에, 기울기 측정은 불가했을테고, 물을 떨어트려보는 다소 원시적이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기울기를 조절 했을것입니다.
로마시대에 지어진 수도교는 11세기까지 유지가 되다가, 레콩키스타(Reconquista)때 세고비아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습니다, 수도교는 16세기가 되어서야 다시 복원이 됐는데, 당시에는 프리오강이 아닌 푸엔프리아 샘 (Fuenfría spring)에서 물을 운반해 왔다고 합니다.
세고비아 수도교는 19세기말까지 실제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1985년에 세고비아 구시가지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됩니다.
'1달차 스페인여행 (2022.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여행] 세고비아 알카사르 내부 - 1 12/5 (2) | 2023.02.03 |
---|---|
[스페인여행] 세고비아 알카사르 + 예약 12/5 (1) | 2023.02.01 |
[스페인여행]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 가는 법 (버스와 렌페) (4) | 2023.01.25 |
[스페인여행] 스페인 마켓에서 장보기 + 마켓 종류 (0) | 2023.01.24 |
[스페인여행] 레티로 공원 12/4 (0) | 2023.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