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로스헤수이타스 성당[Iglesia de los Jesuitas(San Ildefonso)]
안녕하세요 돌라미입니다.
제가 스페인 가기전에 친구에게 톨레도도 방문할거 같다고 말하자,
가게되면 돈 줄테니 칼 한자루 사가지고 오라고 하드라고요.
처음에는 걍 장난으로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얘기하면 할수록 이양반이 거의 90% 진심으로 하던 말이드라구요(돌+아이...)
톨레도에 병장기를 판다는 걸 그 친구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친구 말대로 그런 병장기가 널렸더군요 ㅋㅋㅋ
오늘은 지난번 성당 투어에 대해 설명하면서 언급한(추천도 한)
로스헤수이타스 성당(Iglesia de los Jesuitas)에 대해서 알아볼까합니다.
★관람시간
4월~9월 | 10:00~18:45 |
10월~3월 | 10:00~17:45 |
*매표소는 마감시간 10분전에 문을 닫습니다
쉬는 날 : 1월1일(신정), 12월 25일 (크리스마스)
12월 24,31일은 13시까지만 운영
본래 이 성당의 출발은 대학에서 유래됩니다.
1558년쯤에 나온 예수회(Jesus會)는 신학자이자 톨레도의 대주교였던 바르톨로메 카란자(Bartolomé Carranza)의 허락을 받아 톨레도에 정착할수 있게 되고 예수회 직속의 대학 설립을 인가받습니다.
대학의 설립자가 예수회이다보니 신학을 중심의 대학이 번영하게 되었고, 12명의 성직자와 3명의 학생으로 시작했던 대학은 이후에 성당이 배치된 곳으로 옮겨지고 성직자와 천주교 신자가 공동으로 설립한 학교. 산 에우헤니오(San Eugenio)가 개교했을 때 학생수가 700명에 육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땅의 넓이는 한계가 있는데 지속적으로 학생수가 늘어나게 되니 예수회는 새 부지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1569년 오르가즈 백작 돈 후안 후르타도( Don Juan Hurtado) 소유의 작은 예배당이 있는 집을 구매하게 되는데 이 집이 헤수이타스 성당의 시초가 됩니다. 이 부지는 7세기때 톨레도의 대주교 산 일데폰소 태어났기 때문에 성당을 산일데폰소(San Ildefonso) 성당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무리를 한 탓일까요? 백작에게서 구입한 주택과 확장 비용, 일조량 확보를 위해 병원을 이 장소로 이동한 비용까지, 재정난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남매 관계였던 돈 페드로(Don Pedro)와 도나 에스테파니아 만리케 (doña Estefanía Manrique) 천주교 신자들이 그들의 모든유산을 성당 증축 재정에 환원하게 됩니다. 돈 페드로는 알칸타라(Alcántara)지역의 기사이자, 펠리페 2,3세시기동안 왕을 보좌하는 높은 관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나 에스테파니아 만리케는 펠리페 2세의 부인 중 한명입니다.
두사람이 전재산을 기부하는 것은 카톨릭에 대한 신앙심도 있지만 왕실에 대한 충성심도 같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성당 공사는 1600년초에 후안 바우티스타 모네그로(Juan Bautista Monegro)를 시작으로 시작되었지만, 작업은 계속 지연되는데. 결국 성당이 완공되기도 전인 1718년이 되어서야 임시벽으로 사방을 막고 돈 프란시스코 발레로(Francisco Valero)와 로사(Losa)추기경이 첫 미사를 4일간 지내게 됩니다.
공사가 지연되는데는 되게 다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1642년에 자원부족으로 1669년까지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고, 17세기 초에는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의 건축참여에 관한 논의 때문에 1629년까지 공사가 지연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또 미사가 끝난 후, 몇 해뒤 건축가 호세 에르난데스 시에라(José Hernández Sierra)는 지시로 공사는 1752년까지 또 중단되었다가 1756년이 되어어야 비로소 성당의 거설이 끝이나고 1765년에 루이스(Luis))와 곤살레스 벨라스케스(Alejandro González Velázquez) 형제가 성막까지 완성함으로써 로스헤수이타스 성당 층죽이 최종적으로 마치게됩니다.
그런데 성당이 완공된지 1~2년 만에 카를3세는 예수회가 에스퀼라체 폭동(Esquilache Riots)과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예수회가 가지고 있던 로스헤수이타스 성당을 포함한 학교, 대학, 병원 등의 사유지와 재산을 스페인왕국에 압류당하고 예수회는 스페인에서 해산하게됩니다. 예수회는 1903년에 톨레도로 돌아옴으로써 성당의 소유권도 되찾게됩니다.